이십대는 잊자!

modal.egloos.com


포토로그


나 자신을 위한 소설 -6- 창작

++

학교 정문을 지나 운동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밤바람은 시원하였고 걷는 것은 몸에 좋은 거니까. 이놈의 담배만 중간중간 안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밤의 학교는 역시나 한산했다. 나는 이 한산함을 사랑한다. 

운동장에는 트랙을 도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제는 밤에 운동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운동하기 어려운 계절이니까... 고작 십분을 걸었는데 앉아서 쉬고 싶다. 

내가 학교 안에서 한 마지막 데이트가 운동장이었지. 아마도 월식날이었을 것이다. 월식 시간에 맞춰 월식을 구경하러 운동장에 왔었다. 추운 겨울이었던지라 행여 손이 곱을까 잡은 손을 놓지 않았었지. 그날 따라 달은 컸고, 또한 붉그스레 해졌다. 이런건 빼놓지 말고 보는 것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 먹고 사는 것에 바뻐 그런 이벤트는 기사에서나 보는 것이 되고야 말았다. 

아마 그날도 담배를 피워댔겠지. 여전히 나는 그 자리에서 담배를 폈다. 

이과대를 지나 문대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차피 산책하기로 한거 크게 빙 한바퀴를 도리라 마음 먹는다. 오늘은 걷기 좋은 날이니까. 

문대와 본관의 사이에 벤치에서 다시 발걸음이 멈추었다. 배가 고프다. 사놓은 빵을 꺼내 먹었다. 불현듯 거기서 도시락을 얻어 먹은 기억이 난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락을 싸왔다며 빨리 밥 먹으러 오라던 그녀가 떠올랐다. 시간이 얼마 없다던 그녀는 내가 밥 먹는 것을 옆에서 다 지켜보고 내 수업 장소까지 데려다주고서는 돌아서 뛰어 내려갔었다. 그러니 내 다음 여정지는 상대여야만 한다. 

그날처럼 빵을 우걱우걱 먹은 나는 다시 상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언덕길을 올라 상대를 도착했다. 목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 가끔 그녀는 상B106 문 앞에서 환한 웃음으로 서프라이즈를 해주곤 했다. 그러면 항상 수업 끝나고 담배를 피던 무리들과 이별을 고하고 대신 그녀와 별관 뒤뜰 구석진 벤치에서 둘이서 담배를 피우곤 했었다. 그 자리에 앉아 나는 두 번째 담배를 피웠다. 

이제 다 올라왔으니 내려갈 일만 남았다. 노천극장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노천극장은 P와 헤어진 곳임과 동시에 그녀와 첫번째 데이트를 한 곳이다. 그 날 그녀는 나에게 이 곳에서 안 좋았던 기억일랑 잊고 이제 자기와 좋은 기억만 생각하라고 얘기했었던 것 같다. 좋은 기억.... 그래 좋은 기억이지.... 나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날 그녀에게 이소라의 그 노래를 좋아한다고 얘기했었고, 그 이후로 한동안 이 노래를 듣지 않았다. 

노천극장에서 음대로 향하는 길은 학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벚꽃이 만발하면 그 곳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 길로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봄에는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벚꽃이 피어있는 동안에는 그 길을 걷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정녕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길을 걸을 것이다. 그 벚꽃 길은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걸을 것이니까. 왜냐하면 그녀와는 걷지 않았으니까...

108계단을 내려와 학관 옆으로 갔다. 작은 동산에 있는 벤치. 거기서 다시 한 번 쉬었다. 한 시간 쯤 걸었나보다. 밤이 되면 빛이 없어 대로 바로 옆인데도 길 가는 사람은 벤치에 앉은 사람을 볼 수 없는 그런 장소다. 거기서 키스를 하며 키득 대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다. 

마지막 담배를 물고, '성지순례 한 번 했네.' 생각을 했다. 좋은 기억이니까... 그걸로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집을 향하다가 우연히 이뻐하는 여후배를 만났다. 늦은 밤이었으므로 나는 후배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러 했다. 그러려니 자연히 운동장을 지나게 되었다. 

"L아. 오늘 한 시간 동안 산책해보니 학교에 참 이것저것 추억이 많더라. 너도 그러냐?"
"아니. 오빠 난 사실 예전 일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
"지금이 좋아서 그런건 아니고?"
"글쎄. 어쨌든 다 잊어버렸나봐."
"니가 나보다 낫다."
"하여튼! 엊그제 우연히 만났다더니... 아직도 기분이 그런거?"
"아니. 그냥 좋았던 기억만 떠올려서 그런지 좋았어. 걱정마."
"하여튼 센치한건 대마왕이셔."
"몰랐냐? 그게 이 오빠의 매력인데."
"ㅋㅋㅋㅋ."
"아. 맥주 한 캔 마시고 싶다."
"들어가서 잠이나 주무셔."
"어이쿠. 잔소리는. 그래도 혼자 집으로 걸어가는 것 보단 너 만나서 가니 훨 낫네."
"제가 이정돕니다."
"그래. 니가 젤 이쁜 내새끼다."

혼자 있던 운동장보다는 후배랑 같이 걷는 운동장이 더 좋았다. 그래. 어차피 끝난 일이고. 좋은 일만 기억하면 그걸로 되는거다. 괴로워하지만 않으면 된거지. 

"잘 들어가라."
"오빠도 잘 가."
"그래. 시간 되면 주말에 보자."
"응. 연락할께."

좋은 산책이 이렇게 끝이 났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