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는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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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위한 소설 -2- 창작

나 자신을 위한 소설 -1- (제목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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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은 제 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친구들과 약속도. 가끔 했던 미팅과 소개팅도. 그리고 그보다 드물었던 데이트도. 주로 이곳에서 했었으니까. 그저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니었다. "룰루랄라 신촌을 거니는 이 마음은 이야에로" 라는 노래가사가 가장 적당했을 것이다. 고향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고향에 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신촌은 그저 저 이야에로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자주 갔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익숙해졌고. 단골집도 생기고. 친구들이 가게도 내고. 그러다 보니 더 자주 가고. 그런 순환이 발생한 순간. 더이상 나는 신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S도 당연히 신촌에서 만나게 되었고.

교회 옆 사잇길을 지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골목에 들어가면 있는 J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왔어요?"

학교 선배이자 고향 선배인대도 이 형은 여전히 나에게 반존대를 한다. 친숙하지 않은걸까.

"어? 오늘은 혼자 아니네?"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은 오히려 나에게 편한 듯이 말을 놓았는데 말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놈이다. 벌써 얼굴을 안지 십년 째 되는 형은 아직도 나에게 존대를. 이제 얼굴 안지 일년도 안되는 알바생은 나에게 존대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녀라는 성별의 차이가 있을 때 더욱 도드라진다. 다름은 그것을 내가 가지지 못해서 끌리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가질 수 없어서 끌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다름 자체가 끌리는 것일까.

"여기 주문할께요."

 잠시 뒤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알바생은 나에게 다가왔다. 마치 S가 내 여자친구 예정자라도 되는 양 힐끔 훔쳐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을 한다.

 "까르보나라랑 고르곤졸라 피자 주구. 하이네켄 두 병. 까르보나라는 세트로 줘."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까르보나라 세트 하셨구요. 고르곤졸라 피자와 하이네켄 두 병. 맞으신가요?"
 "어. 맞긴 한데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하던대로 해. 하던대로."
 "갑자기 여자분하고 오니깐 영 어색해서 말이지. 데헷."
 "괜찮아. 그냥 여자 사람이야. 여자 사람. 쿡."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것인지. 장난에 반응한 것인지. S는 씩 웃으며 알바에게 말했다. 

 "이 녀석이 여자랑 여길 안왔었나봐요?"
 "네. 보통은 혼자 와서 커피 하나 시켜놓고 지지리 궁상을 떠는 편이죠. 여자분하고 오신건 처음이에요."
 "알바분이 예쁘셔서 그랬나봐요. 얘 여자라면 사족을 못써서 주변에 엄청 많거든요. 근데 안데려온거 보면 알바분께 잘보이려 했나보죠. 뭐."
 "아하하. 그러기엔 평소에 너무 궁상을 떠셔서 말이죠. 저한테 잘보이시려면 더 잘하셨어야 하는데? 호호."

 아. 이 여자 사람들. 머하는거냐.... 

 "너네 둘 다 그냥 여자 사람이라 그런거니까. 나 좀 그만 씹지? 여기 오늘 물주는 나거든?"

 "어이쿠. 네네. 알아모셔야죠."
 S는 비아냥댔다. 

 "여자랑 왔다고 과시는. 풋!"
 알바는 비웃었다. 
 

- -
P는 웃음이 해맑은 아이였다. 특히. 약간 처지는 눈웃음이 매력적인. 비웃어도 비웃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페이스의 소유자였다.

P는 전학생이었다. 중1 여름방학이 되기 직전. 전학을 왔다. 서글서글한 성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P는 내 인생에 최초의 실패를 맛보게 해 준 사람이다. 그 실패는. 어쩌면 사소하지만. 어쩌면 결정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P는 내 장난에 신경질을 내지 않았다. 어떤 악독한 장난을 해도. P는 그저 생글 웃기만 할 뿐 사춘기의 청소년이 보일만한 격정적인 반응 같은 것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전학생이라 장난을 치던 여러 남자아이들은 결국 그 반응에 지루해하며 더이상 P에게 장난을 치지 않았다. 나만을 제외하고.

그날도 수돗가에 가는 P를 어떻게 골려줄까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교복의 하얀 블라우스가 물에 젖으면 굉장히 부끄러워 할 것이다. 그러니.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에 많이 뿌려줄 수 있는가는 심각한 고민의 주제였다. 바가지도 없고. 그저 수돗가의 물줄기를 바꿔서 젖게 하는 것은 목적 달성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P는 이미 수돗가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안타까운 눈빛이 내 눈가를 스치는 순간. 나는 P에게 물방울들을 맞았다. 씻은 손을 나에게 털며 P는 생글거리고 있었다.

"머야?"
"그동안 나 놀린거 복수! 메롱!"

P는 그리고서 교실로 뛰어갔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얼굴에 뿌려진 몇 방울의 물방울들은 더운 날씨로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었고. 나는 P의 소심한 복수에 오히려 기분이 이상야릇해졌다. 그 사소한 복수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 역시 손을 씻고 교실로 들어갔다.

P와 나는 대각선 앞뒤자리에 앉아있었다. 들어가자 마자 나는 P의 얼굴에 손에 묻은 물을 털어댔다.

"받은만큼은 돌려주는 주의라서."

그 이후로 나는 P에게 심한 장난을 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치는게 내가 치는 장난의 전부였다.
 

+
 맥주가 먼저 나왔다. 우리 둘은 잔을 채우고 건배를 했다. 거창한 건배제의 같은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잔을 부딪히고 맥주를 마시고 이어지는

"캬아!"

하는 감탄사 뿐.

"너 맥주 먹었었나?"
"나이 드니까 맥주가 좋아지더라. 넌?"
"난 원래 맥주는 음료수라고 생각하니깐. 옛날에 시험 끝나면 돈 없어서 진짜 소주 밖에 못먹었는데. 그치?"
"맥주가 음료수라는 새끼가 맨날 그렇게 처먹고 취했냐? 내가 너님 감당하느라 어렸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함? 큭큭"
"술이야 원래 취하려고 먹는거 아니겠냐? 글고 니가 멀 관리를 했냐? 내가 아무리 취해도 두발로 걸어서 가는 연어같은 족속인거 다 알거든! 내가 기억은 없어도 다음날 들은 얘기는 있다고."
"그거 마저 없었으면 너랑 술 안먹었다. 큭큭"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옛 일들을 추억하고 있었다. 옛 친구들의 이름들과 함께. 몇몇의 친구들 얘기가 지나고.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먹으며 여전히 우리는 그동안 살았던 얘기들. 옛 친구들 얘기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음식이 다 없어질 무렵. 우리는 서로가 가장 궁금해 하던 그 아이의 생활을 묻게 되었다.

"K랑은 연락하냐?"
"어. 최근에 연락왔더라. 여자친구랑 헤어졌나봐."
"나보다 낫네. 나는 연락한지 좀 지났는데. 그래도 둘이 연락도 하고 지내는 걸 보니. 괜찮은갑다."
"아냐. 한참 연락 안하다가 갑자기 연락 온거야. 머. 내가 연락하기도 좀 그랬지. 나 다음에 사귄 여자도 내 친구인데. 헤이지고 나니까 연락한건가 보드라."
"그건 그래. 나야 상관 없으니 연락하지만. 그래도 K. 지가 하고싶은거 되서 다행이지. 뭐."
"걘 똑똑하니깐. 어차피 시간문제였자너."
"그런가. 어쨌든 친구가 잘된건 좋은거자나. 나도 나중에 덕 좀 봐야지."
"그러는 너님은 P랑 연락은 되고?"
"아니. 이제 안돼. 나 그거 때문에 작년에 힘들었자너. 후훗."
"머야. 이 재밌는 얘기를 왜 이제서야 하는거야."
"원래 메인 요리는 제일 나중에 나오는 법이지. 그리고 알콜이 들어갔을 때. 쿡쿡"
"야. 가자. 가. 2차는 내가 쏜다."
"그럼 안쏠라 그랬냐? 비싼 얘기거든? 큭"
"아는데 있어?"
"신촌이 내 나와바리라고 얘기했지? 가자. 좋은 술 파는 곳이 있지."

우리는 bar TILT를 향했다.


-
그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모두 바라마지 않는다는 그 학교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내 친구들이 꽤 있었다. 어릴 때는 다들 고만고만했던 친구들이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더니 S처럼 확 달라지더라. 그래서 약자이자 소수인 나는 그쪽으로 놀러가는 경우가 잦았다. 그 곳에 가면 나를 포함 다섯명이 모였다. 나. K. F. 이들은 남자였고. P와 S가 여자였다. NRG(Nokdu rolling garbage)와 GOD(Garbage of Domitory)를 외치며 우리는 그 좁은 녹두거리를 내집마냥 드나들었다. 음악, 정치, 영화 등이 우리의 주요 논제였다. 사실. 이들에 비하면 나는 굉장히 문외한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와 P는. 우리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고. 그것이 편했다. 가끔씩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가 나오면 P와 나는 서로 마주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안도했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재밌었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그 뒤로 우리는 이 때처럼 자주 어울리지 못했다. S는 K와 연애를 시작했다. 이것 뿐이었다면 우리가 자주 못 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P는 같은 학교의 다른 남자애와 CC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애는 우리의 모임을. 정확히 말하면 나를 만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했다. 자연히 P는 자리에 나오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Y와 CC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도 CC를 시작한 이상 다른 학교에 갈만한 시간적 여유가 줄어들고 말았다. 그러면서 우리의 술자리는 그 빈도가 줄어들고 없어지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쩔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자리가 흩어지게 된 것이 아직도 슬프다.

내가 Y와 연애를 시작한 것은 P의 남자친구의 반발심에 대한 나의 반발감이었다. Y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 당시에 여자친구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모임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P의 남자친구가 나에게 갖는 비호감은 상당한 것이어서. 내가 애인이 있음을 증명하고 P와의 관계가 이성관계와 무관함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이 모임을. 아니 P를 내 바운더리에서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Y에게 잘했고. Y와의 연애는 그리 낯 붉히는 일 없이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것이. 진정. 연애가 아님을 깨닫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호감과 정을 구분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K는 어릴적 나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S에게 장난으로 제수씨하고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그러면서 S와 나의 영화보는 것도 끝이 났다. 의동생의 여친과 영화를 볼 정도로 대담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끝나니. 결국은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는 시기가 다가왔다. 우리가 각자 자신의 생활로 다시 모이지 못하고 얼마 후. 나는 군대를 갔다. 이어서 F도 군대를 왔으며. 내가 제대했을 때 연락할 수 있던 사람은 군대를 가지 않고 있었던 K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K는 S의 다른 여자친구와 사귀고 있었다. 나는 S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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