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는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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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위한 소설 -1- (제목 미정)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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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와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군대를 다녀오기 전이었나 보다. 마지막 전화는 아마도 4년 전이었나. S는 대학원을 간다고 했고, 나는 취업준비생이었다. 그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못할 만큼 오래 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은 마지막 걸려온 S의 전화는 술기운이었던 것 같았다는 점이다. 그래서였을까? 술을 마시고 갑자기 S에게 전화를 한 것은...... 그것 또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전화를 했고, 반가웠고, 만나고 싶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불현듯 떠오르는 옛 기억 속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프랑스와 오종을 S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아마도 <스위트 룸>이라는 제목의 영화였던 듯 하다. 아니면 <스위트 풀>이었나....)1) <아메리칸 뷰티>를 보러가서 극장이 깜깜하다는 점에 안도했던 기억도 난다. <아메리칸 뷰티>가 끝나고 얼굴색 하나 안변하면서 얘기하던 S의 모습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어렴풋이 났다. 그 이후, 홍상수고 김기덕이고 찾아보게 된 것도 사실은 S의 영향이 가장 실질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트랜스포머>를 보면서 파괴 본능을 충족하고, <스타 트렉>을 보면서 저건 저렇게 어떻게 구현할 수가 있을까를 떠올리는 공돌이의 삶이 되어버렸지만. 그 땐 그랬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영화들을 보며 허영심을 충족하던 시기. 필요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닌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하던 시기였다. 좋았다.

 

 

"여보세요?"

. 새끼. 어쩐 일이야?”

어쭈? 목소리만 듣고 바로 아네, 카톡 목록을 보다가 니도 있길래. 니 사진이 아니라 긴가민가해서 전화해봤다. 바뀌었나 싶어서.”

잘 했네. 머해?”

그냥 조그만 회사 다녀. 너는?”

이제 대학원 졸업이지. .”

박사?”

. 논문쓰기 싫어 죽겠다.”

하하. 논문이 다들 그렇지 머. 써보지도 않은 놈이 이런다.”

그러게. 여튼 그래서 논문 쓰는거 말고는 한가하다.”

그게 제일 바빠야지. 박사 아주 나일론이네. 주말에 바빠? 시간 되면 얼굴이나 보자.”

그래. 금요일 7시 어때?”

괜찮아. 그 때보자.”

지금 술 마시냐?”

. 술마저 안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냐?”

하긴. 재밌게 놀고, 주말에 봐.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

. 잘 자.”

 

띠리링~

 

그 순간 미소가 지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 프랑스와 오종의 해당 영화의 제목은 <스위밍 풀(Swimming poo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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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S와의 인연은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도, 별거 없다면 별거 없을 수 있는 딱 그 정도였다. 어느 학원에나 가면 있을 법한. 남자애들과 기싸움에서 하나도 밀리지 않고, 마구 주먹세례를 날리던 작지만 깡다구 있던 아이. 얼굴이 그리 예쁘진 않아서 남자애들은 관심에 있지는 않지만, 여자애들에게는 이른바 호위무사가 되어주던 그런 아이 말이다. 기억에 딱 그만큼 차지하고 있던 그 아이와 인연이 이어진 것은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혹자가 주장한 사춘기의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과 올바른 성 인식을 위해 중고등학교를 남녀공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통해서인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기존의 남, 여 중학교들이 남녀공학으로 변화하거나 신설의 남녀공학 학교들이 생겨났었다. 추첨식으로 학교를 배정했기 때문에 정말이지 우연히 나는 S와 같은 학교에 배정받게 되었다. 이전 동네에서 다니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른 동네서 배정받은 나는 학원에서 알게 된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인사조차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친했던 학원 친구들은 다른 학교를 배정 받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남자 같던 성격의 S와 친밀함은 그 시절 아이들이 다들 그러하듯이 얼레리꼴레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 팔이 안으로 굽듯이 그나마 있는 얼굴인식에 힘입어 자연스레 S와 나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남자아이들의 의리에 부합하는 정도의 관계까지는 아니었지만. 성별이 여자인 사람 중에서는 가장 가까웠던 것이 맞았던 것 같다.

 

P가 나타나기 전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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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이네. 4년만인가

너 군대 가고 처음보거든?”

. 그랬나? 그래도 군대에서 까지는 자주 연락했던 거 같아서.”

사내새끼들은 군대에서만 그렇게 전화하더라.”

너도 가봐라. 그렇게 돼.”

 

만나자마자 눈을 흘기는 품새가 마치 중학교 때 녀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졌다.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이런 것이었지. 오랜 기간 보지 않아도. 그것이 오랜 기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 그러고 보면 중학교 때부터 S는 나에게 ~새끼를 붙이기를 좋아했었다. 주로 들었던 말은 병신 새끼였었다. 가끔은 똘아이 새끼도 있었고.

 

새끼 붙이는 건 여전하고만?”

너한테만 그렇거든?”

하긴 너도 서른인데.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해야지. 딴 사람한테까지 그러면 시집 못간다.”

시집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배고파. 밥 사라. 밥 사. 돈 버는 아름답고 고귀한 친구 새끼야.”

박봉에 시달리는 친구에게 할 소리다.”

난 그 박봉도 못 받는 학생이니까!”

으휴~ 저 웬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느님은 말씀하셨다.”

할렐루야!!”

!! 쪽팔리거든!!!”

~ 그래서 머 먹고 싶은데? 어차피 내 나와바리에 왔으니 종류만 정해봐.”

니가 사주는 건 머든 맛있을거 같으니. 그냥... 비싼거!!”

이 웬수~ 따라와! 아는 형이 하는 레스토랑 있는데 거기나 가서 팔아주자.”

좋을대로. 이 새끼. 이럴 때도 영업을 뛰어요. 오지라퍼야.”

관계는 원래 관리할 때 유지되는 거라고.”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15년 변태 새끼.”

네네~ 15년 변태는 쉽게 되는게 아니니까요. 이 웬수 같은 녀석아.”

큭큭. 그래도 받아칠 정도도 되고 많이 발전했네.”

 

“....... 나도 살아야하니까.”

 

마지막 말에 S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따라왔다.

 

 

-

S는 정말이지 어릴 때부터 깡다구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S는 그 깡을 남자애들을 때리는 대신 공부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 입학할 때 쯤 그녀의 전국 모의고사 등수는 두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 부모의 꿈이라는 그 대학 그 법대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 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 서울에 4년제는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집만 떠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공부가 그리 재밌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기고자 하는 욕심도 별로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좋은 것만 하면 그냥 그렇게 살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단지 집을 떠나고 싶었던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못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뿐. 예를 들면 음주나 흡연 같은 것이었다. 하고 싶던 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걸 하기 위해서 가출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정당성이 없는 행동은 비난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시절 대부분의 중고생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유 없이 맞아봤고, 그래서 그것을 비난했었으니까. 나는 모순이 싫었다. 더욱이 일부러 매를 벌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프게 맞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음주가무를 굳이 하지 않아도 죽을만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기도 했다. 내가 남들보다 나았던 것이 있다면 딱 그 정도의 눈치와 센스 그리고 개똥철학 뿐이었다.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지방에서 서울로 같이 대학을 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여전히 친한 친구로 남을 수 있었다. 같이 한 달에 두어 번 영화를 보러 다니고. 시험이 끝나면 소주를 두어 병 마시고. 그 때는 끝물이던 집회에서 학기에 두어 차례 만나면서 우리는 일 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애인이라고 불리우는 존재가 생겼다. 각자.

 

덧글

  • 2013/01/14 21:2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모달 2013/01/22 03:02 #

    네 그렇네요. 이후 글이 써져야 할텐데 잘 안써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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